October 2013 | Source: 1st Look vol.54
이제 겨우 소년이면서 이미 배우가 되어버린 여진구. 이 굉장한 열일곱 살에겐 모든 것이 아직 시작일 뿐이다.
대체 이 소년은 어느 별에서 왔을까? 어디에서 왔기에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인 이 아이는 절절한 사랑을 눈으로 말하고, 공간을 꽉 채우는 목소리로 듣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걸까?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왕세자 훤일 때도, <보고 싶다>에서 지독한 첫사랑을 앓는 정우일 때도 그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아역이 아니었다. 자신이 더는 등장하지 않는 순간에도 캐릭터에 여진구의 그늘을 오랫동안 드리워두는 존재감을 가진 배우였다. 그리고 영화 <화이>는 그의 묵직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롯이 여진구에게서 출발한다. 악의 한가운데서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운 소년은 극 전체를 지탱하는 동시에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된다. 아직 첫사랑도 못해봤고, 친구들과 게임 얘기할 때가 마냥 즐거운 고등학생은 어느새 이만큼 훌쩍 커버린 것이다. 그리고 단단히 여문 성장은 tvN 드라마 <감자별 2013QR3>(이하 <감자별>)의 혜성으로 이어졌다. 속을 알 수 없는 천재 프로그래머로 드디어 성인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여진구를 <감자별>이 처음 방송되는 날 만났다.
<감자별> 첫 방송을 앞두고, 극 중 키스 신 사진이 보도되면서 화제가 됐어요.
살짝 부끄럽지만…. 다행히 예쁘게 찍어주셨는데, 많은 분이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 아직 어리니까요.(웃음)
고등학생이 되면 성인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강렬한 신고식이네요.
(웃음) 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하려니 생각보다 많이 긴장되더라고요. 그래서 더 소중한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아역 연기할 때랑 성인 연기할 때랑 달랐어요. 좀 더 성숙한 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김병욱 감독님이랑 대화도 많이 나눴고요. 다행히 외모 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요.(웃음)
<감자별>의 홍혜성은 한국의 마크 주커버그를 꿈꾸는 프로그래머죠?
네. 베일에 싸인 캐릭터예요. 뭔가 알 듯하면서도 모르겠고, 친근하면서도 약간 먼 느낌? 어떻게 보면 자존심이 센 편인데, 한편으론 제법 장난기도 있어요. 특히 반어법을 많이 쓰는 점이 독특한 캐릭터죠. 감독님께서는 뻔뻔하지만 오빠 같은 면도 있으면 좋겠다고 주문하셨는데, 그 때문에 처음엔 좀 힘든 것도 사실이었어요. 뻔뻔한 역할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목소리도 이렇다 보니….(웃음)
굉장히 낮고 진중한 목소리라 무슨 말을 해도 무게가 실리죠.
그 때문에 연기할 땐 오히려 불편하기도 해요. 무엇보다 대사 전달력이 중요한데 목소리가 워낙 저음이다 보니 대사의 의미보다는 밑으로 깔리는 목소리에 관객의 신경이 집중되는 것 같아 걱정될 때가 있죠. 그래서 대사를 할 땐 평소보다 살짝 톤을 높여서 말하는 편이에요.
김병욱 감독의 작품을 통해 젊은 배우들이 많이 성장하고 사랑도 크게 받았는데, 그런 기대감도 있겠어요.
그런 것보다는 감독님에 대한 팬심 때문에 더 기뻤어요. <하이킥> 시리즈는 물론이고, <순풍 산부인과>도 챙겨 본 골수팬이거든요. <순풍 산부인과>를 처음 방영할 때가 1998년인데, 제가 1997년생이에요.(웃음) 물론 그때는 아기 때라 못 봤지만, 나중에 케이블 등을 통해 시리즈를 섭렵했죠. 그 무렵부터 한 번쯤은 시트콤이란 장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이렇게 <감자별>을 하게 돼서 마음이 설레요. 대본도 정말 완벽하다고 느낄 만큼 재미있고, 감독님이 현장에서 항상 정확한 디렉션을 주셔서 큰 어려움 없이 캐릭터를 잡을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는 또래 배우들과 연기했는데, 이번에는 7세 연상의 하연수 씨가 상대역이에요.
저보다 어린 친구들과 연기할 때랑 느낌이 좀 달라요. 전에는 동생들이기 때문에 제가 리드를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팀에서 아기들을 빼면 제가 가장 막내거든요. 형, 누나들이랑 함께하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항상 재미있어요. 연수 누나하고는 밤샘 촬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늘 웃는 얼굴에 에너지가 넘쳐요. 경표 형하고도 친하고. 장기하 선배님과는 친해지고 있고요. 또 줄리엔 형도 굉장히 좋으세요. 그분을 보고 너무 놀랐어요. 다리가 제 가슴에 있더라고요.(웃음) 제가 낯을 좀 가리는 편인데, 다들 먼저 다가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서 시트콤처럼 배우들이 많은 현장도 낯설진 않겠어요.
그런데 실은 제가 약간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요.(웃음) 영화나 드라마 현장에서 쓰는 큰 카메라는 코앞까지 와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데, 메이킹 영상이나 화보 찍을 때 쓰는 작은 카메라가 얼굴로 다가오면 되게 긴장해요. 땀까지 나서 셀카도 못 찍어요. 손은 큰데 휴대폰을 잡고 버튼을 누를 수가 없어요. 셀카 잘 찍는 분들 보면 신기해요. 저걸 어떻게 찍을까. 정말 예쁘게 찍잖아요. 저는 찍으면 흔들리고 만날 이상하게 나오더라고요.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죠?
고 1과 중 3은 하늘과 땅 차이라던데 맞나요?
사실 중 3 때는 ‘고 1 뭐 별거 있겠어?’ 했어요. 인터뷰할 때도 “고 1 돼도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바보스러웠던 것 같아요.(웃음) 정말 천지차이예요. 고등학교 처음 올라가서 시험을 본 뒤 성적이 나왔는데 내 성적이 맞나 싶어 깜짝 놀랐죠. 중학교 때는 시험 전날 벼락치기하면 어느 정도 성적이 나왔는데, 고등학교에서는 절대 안 되더라고요. 꾸준히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행동은 늘 좀 부족해요.
<화이>의 화이 역시 진구 씨와 동갑인 열일곱 살이에요. 캐릭터가 남달랐겠어요.
화이는 정말 엄청난 배려심을 가진 아이예요. 범죄자 집단에서 길러진 아이인데, 그걸 알면서도 아빠들을 정말 사랑하고, 항상 웃어주는 아이고요. 그러다 보니 아빠들도 화이를 사랑하고, 그래서 더 안타까운 이야기예요. 대본을 읽으면서 ‘이 아빠들이 화이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는 점이 느껴져서 더 울컥하기도 했고, 얘는 이걸 실제로 겪었을 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가슴이 답답했죠. 그러면서 화이에게 자연스레 감정 이입하게 되더군요. 헤어 나오지 못할까 봐 걱정스러웠을 만큼….
<화이>도 그렇고, <해를 품은 달>의 훤이나 <보고 싶다>의 정우도 사랑이든 비극이든 일상에서 흔히 느낄 수 없는 진폭이 큰 감정을 연기했는데, 경험치를 쓸 수 없는 상태에서는 무엇을 연기의 재료로 삼나요?
감독님하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번에 <감자별>도 그랬고, <화이>도 장준환 감독님과 대화를 정말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첫 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중이 큰 역할이었고, 무엇보다 화이라는 캐릭터가 복잡했거든요. 처음에는 단순해 보였는데, 이게 너무 복잡해서 오히려 단순해 보이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대본을 읽을수록 다르게 느껴졌어요. 현장에서 바뀐 점도 많았고. 마지막 촬영일까지 <화이>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약간 불안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감자별>로 오면서 화이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화이는 범죄자 아빠들에게 키워지지만 범죄가 아닌 다른 꿈을 꿉니다. 진구 씨도 배우 말고 다른 꿈도 꾸나요?
지금으로서는 일단 배우가 되는 게 가장 큰 꿈이지만, 다른 것도 해보고 싶어요. 배우고 싶은 것도, 가보고 싶은 곳도, 먹어보고 싶은 것도 정말 많죠. 이른 나이에 뚜렷한 장래 계획이 생긴 건 다행인 것 같아요. 친구들도 부러워해요. 지금 한창 ‘나는 뭘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할 땐데, 저는 일찍 찾았잖아요. 부모님이 적극 지지해주신 편이라 ‘나는 부모님을 정말 잘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친구들도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부모님이 반대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영화에 처음 출연했을 때가 여덟 살이었는데 기억나요?
네. 그때는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현장에 놀러 가는 것 같았어요. 형, 누나들이랑 놀러 가는 느낌? 현장에서 까불거리던 게 기억나요. 그러다가 내가 진짜 연기를 한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중학교 1학년 때 드라마 <자이언트>를 찍는데, 처음으로 감독님이랑 직접 이야기해서 캐릭터를 잡았어요. 그때 정말 연기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솔직히 그 당시만큼 역할에 집중한 적은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감독님이랑 처음으로 대본에 대해 이야기했으니까요. 그때는 머릿속에 강모라는 아이밖에 없었어요.
사람들한테 여진구는 어떤 사람으로 보이면 좋겠어요? 갖고 싶은 이미지가 있나요?
그런 건 아직 뚜렷하게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 보여야지’보다는 그냥 최대한 저를 있는 그대로 설명해드리고 싶어요. 어떻게 보여야지 해서 말을 하다 보면 좀 가상의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요. 실제의 저는 장난도 많이 치고 시끄러운 편이에요.(웃음) 많은 분이 제가 과묵할 줄 아시는데 절대 아니거든요. 제가 했던 캐릭터들이 젠틀하고 배려심이 깊어서 저 또한 진지하고 과묵한 아이일 거라고 오해하지만, 다들 실제로 만나보면 ‘생각보다 좀 말이 많네요’라는 반응이죠. 학교에서는 하도 장난을 쳐서 선생님들이 저만 보고 있으실 정도예요.(웃음)
요즘에는 가장 고민되는 게 뭐예요?
작년에는 내신 성적과 키가 제일 고민된다고 했는데요. 다행스럽게도 키는 계속 크고 있고요. 올해는 아무래도 <감자별>을 오랫동안 촬영해야 하니까 모든 분이 사고 없이 잘 끝내면 좋겠어요. 첫 주연작 <화이>도 주변 분들이 잘했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정말 잘 나오면 좋겠어요. 그런데 제가 그걸 못 봐요! 하… 정말 미치겠어요.
그럼, 지금은 <화이>를 못 보는 게 가장 큰 고민인 거예요?
(웃음) 네. 저 진짜 2년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글 이지혜 ▣
에디터 이상민
포토그래퍼 김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