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ANT BOY 여진구

October 2013 | Source: 1st Look vol.54

이제 겨우 소년이면서 이미 배우가 되어버린 여진구. 이 굉장한 열일곱 살에겐 모든 것이 아직 시작일 뿐이다.

핀 스트라이프 베스트·같은 패턴의 슈트는 모두 카루소, 안경은 올리버 골드스미스 by 옵티컬W.
베이지 컬러의 풀오버·팬츠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
이너로 입은 체크 셔츠·네이비 컬러의 더블 버튼 슈트·체크 패턴의 스카프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
레이스와 프릴 장식의 체크 패턴 셔츠·블랙 팬츠·블랙 슈즈는 모두 프라다.
블랙 컬러 풀오버·지퍼 디테일의 카디건은 모두 디올 옴므, 블랙 페도라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너로 입은 체크 셔츠·레드 컬러의 니트·블랙 팬츠는 모두 프라다.

대체 이 소년은 어느 별에서 왔을까? 어디에서 왔기에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인 이 아이는 절절한 사랑을 눈으로 말하고, 공간을 꽉 채우는 목소리로 듣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걸까?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왕세자 훤일 때도, <보고 싶다>에서 지독한 첫사랑을 앓는 정우일 때도 그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아역이 아니었다. 자신이 더는 등장하지 않는 순간에도 캐릭터에 여진구의 그늘을 오랫동안 드리워두는 존재감을 가진 배우였다. 그리고 영화 <화이>는 그의 묵직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롯이 여진구에게서 출발한다. 악의 한가운데서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운 소년은 극 전체를 지탱하는 동시에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된다. 아직 첫사랑도 못해봤고, 친구들과 게임 얘기할 때가 마냥 즐거운 고등학생은 어느새 이만큼 훌쩍 커버린 것이다. 그리고 단단히 여문 성장은 tvN 드라마 <감자별 2013QR3>(이하 <감자별>)의 혜성으로 이어졌다. 속을 알 수 없는 천재 프로그래머로 드디어 성인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여진구를 <감자별>이 처음 방송되는 날 만났다.

<감자별> 첫 방송을 앞두고, 극 중 키스 신 사진이 보도되면서 화제가 됐어요. 
살짝 부끄럽지만…. 다행히 예쁘게 찍어주셨는데, 많은 분이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 아직 어리니까요.(웃음) 

고등학생이 되면 성인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강렬한 신고식이네요.
(웃음) 네.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하려니 생각보다 많이 긴장되더라고요. 그래서 더 소중한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아역 연기할 때랑 성인 연기할 때랑 달랐어요. 좀 더 성숙한 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김병욱 감독님이랑 대화도 많이 나눴고요. 다행히 외모 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요.(웃음)

<감자별>의 홍혜성은 한국의 마크 주커버그를 꿈꾸는 프로그래머죠? 
네. 베일에 싸인 캐릭터예요. 뭔가 알 듯하면서도 모르겠고, 친근하면서도 약간 먼 느낌? 어떻게 보면 자존심이 센 편인데, 한편으론 제법 장난기도 있어요. 특히 반어법을 많이 쓰는 점이 독특한 캐릭터죠. 감독님께서는 뻔뻔하지만 오빠 같은 면도 있으면 좋겠다고 주문하셨는데, 그 때문에 처음엔 좀 힘든 것도 사실이었어요. 뻔뻔한 역할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목소리도 이렇다 보니….(웃음) 

굉장히 낮고 진중한 목소리라 무슨 말을 해도 무게가 실리죠. 
그 때문에 연기할 땐 오히려 불편하기도 해요. 무엇보다 대사 전달력이 중요한데 목소리가 워낙 저음이다 보니 대사의 의미보다는 밑으로 깔리는 목소리에 관객의 신경이 집중되는 것 같아 걱정될 때가 있죠. 그래서 대사를 할 땐 평소보다 살짝 톤을 높여서 말하는 편이에요. 

김병욱 감독의 작품을 통해 젊은 배우들이 많이 성장하고 사랑도 크게 받았는데, 그런 기대감도 있겠어요. 
그런 것보다는 감독님에 대한 팬심 때문에 더 기뻤어요. <하이킥> 시리즈는 물론이고, <순풍 산부인과>도 챙겨 본 골수팬이거든요. <순풍 산부인과>를 처음 방영할 때가 1998년인데, 제가 1997년생이에요.(웃음) 물론 그때는 아기 때라 못 봤지만, 나중에 케이블 등을 통해 시리즈를 섭렵했죠. 그 무렵부터 한 번쯤은 시트콤이란 장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이렇게 <감자별>을 하게 돼서 마음이 설레요. 대본도 정말 완벽하다고 느낄 만큼 재미있고, 감독님이 현장에서 항상 정확한 디렉션을 주셔서 큰 어려움 없이 캐릭터를 잡을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는 또래 배우들과 연기했는데, 이번에는 7세 연상의 하연수 씨가 상대역이에요. 
저보다 어린 친구들과 연기할 때랑 느낌이 좀 달라요. 전에는 동생들이기 때문에 제가 리드를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팀에서 아기들을 빼면 제가 가장 막내거든요. 형, 누나들이랑 함께하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항상 재미있어요. 연수 누나하고는 밤샘 촬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늘 웃는 얼굴에 에너지가 넘쳐요. 경표 형하고도 친하고. 장기하 선배님과는 친해지고 있고요. 또 줄리엔 형도 굉장히 좋으세요. 그분을 보고 너무 놀랐어요. 다리가 제 가슴에 있더라고요.(웃음) 제가 낯을 좀 가리는 편인데, 다들 먼저 다가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서 시트콤처럼 배우들이 많은 현장도 낯설진 않겠어요. 
그런데 실은 제가 약간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요.(웃음) 영화나 드라마 현장에서 쓰는 큰 카메라는 코앞까지 와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데, 메이킹 영상이나 화보 찍을 때 쓰는 작은 카메라가 얼굴로 다가오면 되게 긴장해요. 땀까지 나서 셀카도 못 찍어요. 손은 큰데 휴대폰을 잡고 버튼을 누를 수가 없어요. 셀카 잘 찍는 분들 보면 신기해요. 저걸 어떻게 찍을까. 정말 예쁘게 찍잖아요. 저는 찍으면 흔들리고 만날 이상하게 나오더라고요.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죠? 

고 1과 중 3은 하늘과 땅 차이라던데 맞나요? 
사실 중 3 때는 ‘고 1 뭐 별거 있겠어?’ 했어요. 인터뷰할 때도 “고 1 돼도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바보스러웠던 것 같아요.(웃음) 정말 천지차이예요. 고등학교 처음 올라가서 시험을 본 뒤 성적이 나왔는데 내 성적이 맞나 싶어 깜짝 놀랐죠. 중학교 때는 시험 전날 벼락치기하면 어느 정도 성적이 나왔는데, 고등학교에서는 절대 안 되더라고요. 꾸준히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행동은 늘 좀 부족해요.

<화이>의 화이 역시 진구 씨와 동갑인 열일곱 살이에요. 캐릭터가 남달랐겠어요.  
화이는 정말 엄청난 배려심을 가진 아이예요. 범죄자 집단에서 길러진 아이인데, 그걸 알면서도 아빠들을 정말 사랑하고, 항상 웃어주는 아이고요. 그러다 보니 아빠들도 화이를 사랑하고, 그래서 더 안타까운 이야기예요. 대본을 읽으면서 ‘이 아빠들이 화이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는 점이 느껴져서 더 울컥하기도 했고, 얘는 이걸 실제로 겪었을 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가슴이 답답했죠. 그러면서 화이에게 자연스레 감정 이입하게 되더군요. 헤어 나오지 못할까 봐 걱정스러웠을 만큼…. 

<화이>도 그렇고, <해를 품은 달>의 훤이나 <보고 싶다>의 정우도 사랑이든 비극이든 일상에서 흔히 느낄 수 없는 진폭이 큰 감정을 연기했는데, 경험치를 쓸 수 없는 상태에서는 무엇을 연기의 재료로 삼나요? 
감독님하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번에 <감자별>도 그랬고, <화이>도 장준환 감독님과 대화를 정말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첫 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중이 큰 역할이었고, 무엇보다 화이라는 캐릭터가 복잡했거든요. 처음에는 단순해 보였는데, 이게 너무 복잡해서 오히려 단순해 보이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대본을 읽을수록 다르게 느껴졌어요. 현장에서 바뀐 점도 많았고. 마지막 촬영일까지 <화이>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약간 불안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감자별>로 오면서 화이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화이는 범죄자 아빠들에게 키워지지만 범죄가 아닌 다른 꿈을 꿉니다. 진구 씨도 배우 말고 다른 꿈도 꾸나요?
지금으로서는 일단 배우가 되는 게 가장 큰 꿈이지만, 다른 것도 해보고 싶어요. 배우고 싶은 것도, 가보고 싶은 곳도, 먹어보고 싶은 것도 정말 많죠. 이른 나이에 뚜렷한 장래 계획이 생긴 건 다행인 것 같아요. 친구들도 부러워해요. 지금 한창 ‘나는 뭘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할 땐데, 저는 일찍 찾았잖아요. 부모님이 적극 지지해주신 편이라 ‘나는 부모님을 정말 잘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친구들도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부모님이 반대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영화에 처음 출연했을 때가 여덟 살이었는데 기억나요?
네. 그때는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현장에 놀러 가는 것 같았어요. 형, 누나들이랑 놀러 가는 느낌? 현장에서 까불거리던 게 기억나요. 그러다가 내가 진짜 연기를 한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중학교 1학년 때 드라마 <자이언트>를 찍는데, 처음으로 감독님이랑 직접 이야기해서 캐릭터를 잡았어요. 그때 정말 연기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솔직히 그 당시만큼 역할에 집중한 적은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감독님이랑 처음으로 대본에 대해 이야기했으니까요. 그때는 머릿속에 강모라는 아이밖에 없었어요.

사람들한테 여진구는 어떤 사람으로 보이면 좋겠어요? 갖고 싶은 이미지가 있나요?
그런 건 아직 뚜렷하게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 보여야지’보다는 그냥 최대한 저를 있는 그대로 설명해드리고 싶어요. 어떻게 보여야지 해서 말을 하다 보면 좀 가상의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요. 실제의 저는 장난도 많이 치고 시끄러운 편이에요.(웃음) 많은 분이 제가 과묵할 줄 아시는데 절대 아니거든요. 제가 했던 캐릭터들이 젠틀하고 배려심이 깊어서 저 또한 진지하고 과묵한 아이일 거라고 오해하지만, 다들 실제로 만나보면 ‘생각보다 좀 말이 많네요’라는 반응이죠. 학교에서는 하도 장난을 쳐서 선생님들이 저만 보고 있으실 정도예요.(웃음)

요즘에는 가장 고민되는 게 뭐예요?
작년에는 내신 성적과 키가 제일 고민된다고 했는데요. 다행스럽게도 키는 계속 크고 있고요. 올해는 아무래도 <감자별>을 오랫동안 촬영해야 하니까 모든 분이 사고 없이 잘 끝내면 좋겠어요. 첫 주연작 <화이>도 주변 분들이 잘했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정말 잘 나오면 좋겠어요. 그런데 제가 그걸 못 봐요! 하… 정말 미치겠어요.

그럼, 지금은 <화이>를 못 보는 게 가장 큰 고민인 거예요?
(웃음) 네. 저 진짜 2년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글 이지혜 ▣

빈티지한 무드의 데님 셔츠는 휴고 보스, 네이비 페도라는 캉골, 블랙 스트랩 시계는 티쏘.

에디터 이상민
포토그래퍼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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